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색 작전 (문단 편집) == 결과 == [[파일:external/i58.fastpic.ru/e93576ea4e142498479f019cf8484ad6.jpg]] 이 작전의 일부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큰 실패로 인해 청색 작전은 실패했고, 독일군은 루마니아군, 이탈리아군, 헝가리군까지 포함하면 100만명에 달하는 전력을 상실했으며 그 중 30만명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죽었다. 독일은 이로 인해 2차대전 종결까지 이전의 전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독일군에는 많은 명장들과 노련한 베테랑들이 남아 있었지만, 소련군의 기량 역시 상당히 성장하였고 미국산 [[렌드리스]]에 힘입은 소련군의 물량을 상대로 열세에 놓이게 된다. 소련군의 천왕성 작전은 그들의 성장한 작전 수행 능력을 여실히 증명했으며 이후엔 이전보다 점점 더 효율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탱크와 보병은 서로를 제법 능숙하게 보조했고, 새로이 탄생한 탱크군단과 기계화군단은 이전에는 부족했던 돌파력과 기동력을 제공했다. 적 탱크를 철거해버리기 위한 구축전차와 자주포도 대량 배치되었고, 1943년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단점들을 개선한 개량형 무기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공군에서는 이전같이 띄엄띄엄 배치된 형태는 사라지고 거대한 항공대가 만들어졌다. 일류신 il-2는 떼로 몰려다니며 본격적으로 독일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1941년의 문제점들의 다수가 개선되었으며, 이제 소련 공군은 독일 공군과 대등한 전투가 가능해졌고 이전같은 기적적인 교환비는 나오기 힘들어졌다. 물론 여전히 소련군의 사상자가 독일군의 사상자보다 최소 2배 이상 더 많았지만 그것이 독일의 승리를 뜻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청색 작전에서의 소련군의 사상자는 220만명에 달했지만 소련의 초월적인 동원능력과 대규모 공업 생산력,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국의 [[렌드리스]] 지원으로 순식간에 전력 회복이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전쟁의 주도권은 연합군에게 넘어갔으며 독일군은 더 이상의 대규모 전략적 공세 능력을 사실상 완잔히 상실해버리고 만다. 독일 남부집단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모되고 붕괴하는 동안 독일 중부집단군은 [[발터 모델]] 장군의 지휘하에 [[르제프 전투]]에서 분전하며 거둔 전술적 대승을 바탕으로 [[들소 작전]]을 통해 르제프 돌출부에서 피해가 전무한 수준으로 철수 작전을 완벽히 성공시켜 병력을 거의 온전히 보존하는 등 독일이 아직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대패를 만회하기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고, 1941년의 압도적인 위용은 이제는 빛바랜 추억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무적의 독일군이 그들이 가한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포위되어 처참히 패배했다는 것이었다. 6군의 저항을 신화로 만들고자 했던 히틀러와 괴벨스는 파울루스의 항복을 거세게 비난하여 그 충격을 무마하려 했지만, 독일 국민들이 겪는 패배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위기감은 사실 모스크바 전투 때부터 퍼져나갔다. 언론들은 독일군의 동계장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독일 국민들의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군이라고 마냥 웃을 일은 아니었다. 이 작전으로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의 엄청난 병력 손실에 필적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220만명이라는 상당한 수의 병력을 손실했으며, 이중 상당수가 보병이었다. 이러한 여파로 인한 보병 전력 부족은 전쟁 말기 바그라티온 작전 시기에 달하면 꽤나 심각해져 한 개 사단에 2000명 밖에 남지 않는 수준(!)에 이른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미국의 [[렌드리스]] 지원에 힘입어 전쟁을 계속 자신의 손안에서 이끌었다. 어찌되었든 소련군의 승리로 인해 소련은 [[그로즈니]], [[바쿠]]라는 거대한 석유 공급망을 보존할 수 있었고 [[페르시아 침공]]으로 확보한 이란발 [[무기대여법|렌드리스]] 항로도 유지할 수 있었다. 결국 총력전 수준의 전쟁수행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에나 총력전 선포를 하여 연합군과 비슷한 수준의 전쟁수행능력 보유가 어려웠던 독일을 패전의 길로 끌고 가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